[커버스토리] 의대 진학 열풍 어떻게 봐야 할까요

입력 2023-09-18 10:01   수정 2023-09-18 16:00

의대 열풍이 뜨겁습니다. 독자 여러분 중에도 의대 진학을 꿈꾸는 사람이 많을 테죠. 의대의 인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높아졌습니다. 갑작스러운 경제 충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자연스레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의 인기가 높아졌죠.

이후 한때 공무원과 교사가 인기 직종으로 부상했고, 바이오(생명공학)와 인공지능(AI), 반도체 등도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의대 열풍은 되레 더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의대뿐 아니라 비슷한 면허증을 딸 수 있는 학과까지 인기 범위가 넓어졌습니다. 이른바 ‘의치한약수(의대·치대·한의대·약대·수의대)’가 대입 수험생들의 목표가 됐습니다. 대학에 다니다가 의대 진학을 위해 자퇴하는 학생도 늘고 있습니다. 지난해 서울대에서 341명이 자퇴했습니다. 3년 연속 사상 최다입니다. 자퇴생 대부분이 의대 진학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의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가 서울대 공대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죠. 의대 진학 열풍의 원인은 의사가 연봉이 높고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이 직업을 선택할 때 그 직업에서 기대하는 보상을 가리키는 ‘직업 가치’ 관점에서 의대 열풍을 따져봅시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지금처럼 수재들이 의대로만 몰리면 다른 분야로 우수한 인력을 골고루 배분할 수 없습니다. 의사의 기득권은 의대 정원 제한으로 유지됩니다. 의대 정원을 둘러싼 논란과 이공계 기피 문제를 살펴봅시다.
진로선택은 주변 사람 따라하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가치<직업에서 기대하는 보상>를 기준 삼아야
로버트 프랭크 미국 코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의 행동을 모방하는 경향을 가리켜 ‘행동 전염(behavioral contagion)’이라고 설명합니다. 행동 전염이 확산되면 그 행동은 밈(meme)이 돼 특정 상황에서 개인 행동의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밈은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1976년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소개했습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생각, 아이디어, 행동 양식을 말합니다.
‘의대 진학’ 우선 고려는 일종의 밈
독자 여러분 같은 중학생과 고등학생이 어떤 대학, 어떤 학과에 진학할 지, 그래서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질지 부모님과 함께 고민하는 상황을 생각해볼까요. 특히 성적이 좋은 학생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의대 진학’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 요즘 우리나라의 세태 같습니다. 그만큼 ‘성적 좋은 학생(성적이 좋아지길 바라며 노력하는 학생도 포함)이라면 의대 진학을 생각하는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확산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경제위기도 자주 발생하는 세상에서는 의사만 한 직업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대 입학의 좁은 관문을 넘어 힘든 수련 과정을 견뎌내면 또래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연봉이 보장되고 안정적으로 오랫동안 일할 수 있습니다. 2020년 기준 우리나라 의사는 평균 연봉 2억3070만 원을 받습니다. 대기업 직원 평균 연봉(7008만원)의 3배가 넘습니다. 경제적 보상뿐 아니라 어디서나 ‘의사 선생님’ 소리를 듣는 높은 사회적 지위도 주어지고요. 이런 의사가 되려고 의대 진학을 목표로 삼는 것은 개인 입장에서는 지극히 합리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수 지드래곤의 노래 ‘삐딱하게’의 가사 “영원한 건 절대 없어~”처럼 지금은 당연해 보이고 영원할 것 같은 상황이나 조건이라도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구온난화나 인구 고령화 같은 눈에 보이는 요인 혹은 예상할 수 없는 갑작스러운 요인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나 조건이 바뀌면 현재의 합리적 선택이 비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나는 이 직업에서 무엇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대학 전공과 직업을 선택할 때, 앞으로 세상이 변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행동 전염과 밈에 휘둘리지 않을 방법 말이죠.

일반적으로 진로 선택에서는 개인의 특성, 그러니까 흥미나 적성을 고려합니다. 청소년 진로 교육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흥미나 적성을 포함하는 직업 가치가 중요하다고 설명합니다. 직업 가치는 개인이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그 직업에서 기대하는 보상을 말합니다. 달리 표현하면, 개인이 자신의 인생에서 그 직업을 통해 원하는 것이 바로 직업 가치입니다. 예를 들어 성취감, 사회적 인정, 사회봉사, 몸과 마음의 여유, 넉넉한 수입 등입니다.

학자들은 이런 여러 직업 가치를 내적 가치와 외적 가치로 구분합니다. 내적 가치는 직업을 통한 흥미와 적성 추구, 성취감, 사회봉사 등을 말합니다. 외적 가치는 사회적 인정, 몸과 마음의 여유, 넉넉한 수입 등을 가리킵니다.

선혜연 한국교원대 교수 등이 2003년부터 5년간 학생들의 직업 가치 변화를 연구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3000여 명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어떻게 직업 가치가 변하는지를 조사한 거죠.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학생들의 내적 가치 추구 성향이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외적 가치를 추구하는 성향은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강해졌다가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매년 약해졌습니다.

의대 진학을 원하는 학생 중에는 내적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외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대학 전공과 직업을 선택할 때 자신이 원하는 직업 가치가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보기를 권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니까 괜찮을 거야’라며 행동 전염과 밈에 휘둘리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입니다.
NIE 포인트
1. 행동 전염을 설명해보자.

2. 현재의 합리적 선택이 계속 합리적일지 생각해보자.

3. 직업 가치가 무엇인지 정리해보자.
2006년부터 동결된 의대 정원 늘리라는 사회적 압력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어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따르면, 의사의 높은 연봉과 직업 안정성은 의대 정원 제한으로 유지되는 기득권입니다. 의대 입학생 수를 제한하면 나중에 배출되는 의사 수도 크게 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의사 공급을 관리하면 기득권은 위협받지 않습니다. 경제성장과 인구 고령화 추세를 감안할 때 의료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라서 ‘수요 증가, 공급 제한’이 의사 기득권을 유지하는 것이죠.

우리나라 의대는 1885년 세브란스(연세대 의대)를 시작으로 1980년까지 약 100년간 19개가 설립됐습니다. 이후 1998년까지 22개가 더 만들어졌고, 현재는 40개입니다. 의료계에서는 1980년 이후 단기간 너무 많은 의대가 신설돼 부실 교육, 의료의 질적 수준 저하 등에 대한 우려가 증가했다고 주장합니다.
“의사 2만 명 넘게 부족”
의대 정원을 둘러싼 논란은 오랫동안 이어져왔습니다. 전국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3058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대 정원 동결이 의사 부족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돼왔죠. ‘소아과 오픈런’이나 ‘응급실 뺑뺑이’ 등 필수 의료 분야 인력 부족이 특히 심각합니다. 정부는 2020년 8월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지만, 의료계 집단 휴진에 부딪혀 무산됐습니다.

의대 정원을 확대하려면 먼저 향후 적정 의사 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추계)해야 합니다. 그런데 미래 의료 수요에 부합할 의사 인력을 추계하는 것은 복잡한 일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추계하느냐에 따라 정답이 달라질 수 있어 논쟁이 끊이지 않았죠.

정부와 의사협회는 의사 인력 추계를 위한 전문가 포럼을 열자고 합의하고 지난 6월 27일 첫 포럼을 열었습니다. 이날 포럼에서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2050년 2만2000명 넘는 의사가 추가로 필요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의사 수요를 충족하려면 2030년까지 의대 정원을 매년 5%씩 늘려야 한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매년 5%씩 늘리면 2030년 국내 의대 정원은 4303명이 됩니다. 신영석 고려대 교수도 “2035년 국내 의사가 2만7232명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로 문제 해결 안 돼”
이런 주장에 의료계는 의대 정원 확대로는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장은 “국내 활동 의사 증가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높아 현 정원을 유지해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047년 5.87명으로, OCED 평균 5.82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김윤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는 이런 주장을 적극 반박했습니다. 의사협회 주장대로라면 2050년에 국내 의사가 8000명 넘게 증가하는데, 이는 현 의대 정원(3058명)보다 2배 이상 많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필수 의료 기피가 심화되고 지역 의료 격차가 커지는 상황이라 강력한 의지를 갖고 의사 인력 확충을 추진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로스쿨로 변호사 수 급증
의대 정원은 이공계 기피 문제와도 관련이 깊습니다. 의대 정원이 제한돼 의사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한 다른 학과를 선택하는 사람이 줄어 이공계 기피 문제가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자동차, 항공우주산업 등 우리나라 미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우수한 인력이 배분돼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의대 쏠림이 지속되면 미래 경쟁력 확보는 공염불에 그치게 됩니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그래서 의사 수가 늘어나면 의료 서비스의 질이 낮아지는 등의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009년 25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생겼습니다. 2011년 1만2607명이던 변호사 수는 2020년 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2025년엔 4만 번째 등록변호사가 탄생할 전망입니다. 그동안 법률 서비스 수준은 높아졌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의대 정원을 늘리라는 사회적 압력이 계속해서 커지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의대 정원 현황을 정리해보자.

2. 의대 정원 확대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보자.

3. 변호사 수 증가와 법률 서비스 수준에 대해 생각해보자.

장경영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long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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